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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년도에 초판으로 발행되었던 전 21권짜리 만화책을 어렵게 구해서 약 이틀에 걸쳐 읽었다.  ( 요새는 위의 그림과 같이 전 32권으로 분량만 늘려 다시 재출간해 파는 듯 하다. )
이 책의 서문에 동료만화가 박재동이 쓴 글에 의하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전 21권을 다 읽을때까지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라고 평했는데, 과연 그랬다 -_-;
일요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저녁때마다 틈틈히 읽어서 2일만에 다 읽어 버렸다. ( 그나마 제때? 자고 할일 다 하고 매일 밤 9시 부터 읽었으니 나름 자제력을 갖고 읽은 듯... )

이 책은 본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을 바탕으로 하는 만화책이다. 70 ~ 80 년대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되었다 하는데, 읽다보니 왜 금서로 지정되었는지 알만 했다.

이 만화에서 작가 이두호가 가장 주안점을 두고 묘사한 것은 왜 임꺽정이 도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당시 사회 권력층이던 양반들에게 고혈을 빨리며 벌레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려, 이들이 결국 도적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상민과 천민( 백정인 임꺽정 가족을 포함하여)은 사람대접을 못받고, 말 그대로 개나 돼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여자 천민들은 양반의 성 노리개가 되곤 하고 ( 임꺽정의 여동생 꺽순과 형수 길녀도 양반에게 겁간을 당한 아픔을 가지고 사는 것으로 설정됨 ), 양반들은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면 백주 대낮에 천민들을 파리 죽이듯 죽여 없애지만 법은 양반의 편을 든다. 감나무, 대추나무에 까지 세금을 매기고 백성의 재산들이 수탈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16세기 중반, 남해안에 왜변이 일어났을때 임꺽정은 관병으로 자원하여 당시 대장이던 남치적의 목숨을 구하고 왜적을 소탕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오히려 사람만도 못한 백정이 군졸 행세를 했다고 박대를 당하고 쫒겨난다. 힘과 기량을 갖추었지만 천한 신분때문에 벼슬길이 막혀있고 한평생 소백정으로 살아야 했던 임꺽정은 양반들의 행포를 참지 못하고 결국 동료 조맹덕, 장학봉, 황봉출, 박돌깨, 구만포 등과 의기 투합하여 황해도 청석골에 산채를 마련하고 관가와 탐관오리를 노략질하여 인근 백성에게 훔친 재물을 나누어주는 의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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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만화를 읽다보면 워낙 양반의 횡포를 잔인하게 묘사한 내용이 많아 ( 이 만화에서 백주 대낮의 길거리에서 양반이 사람 죽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이 당시 양반들은 모두 살인 면허가 있었나 -,.- ) 임꺽정 일당이 도적이 되는 과정의 당위성을 자연스레 역설한다.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의 억압에 항거하여 도적이 되는 과정은 이해가 되어도, 의적이 되어 탐관오리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부분에 대한 인과관계는 설명이 매우 약했다. 임꺽정을 영웅으로 묘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와 도적행위의 정당성을 위한 장치였지만, 의적의 우상화를 시도하는 부분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임꺽정의 도적행위는 당시의 잘못된 양반사회에 대한 백성들의 조직적인 반항의 표현이란 것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반대 의견이 없으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 이라는 당시 사서의 표현대로, 평범한 백성들이 도적이 될 수 밖에 없던 사회는 커다란 모순을 가지고 있었고, 임꺽정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민란과 도둑떼들의 창궐은 잘못된 사회에 대한 경고로 사회자체의 자정작용을 일으키기 위한 반응이었다. 결국 책에서는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방법으로 백성들의 쿠데타가 선택되고, 임꺽정을 주동으로 한 그 쿠데타는 사회 지도층의 탄압에 의해 해산되는 것으로 결론짓지만. ( 조정에서는 임꺽정 소탕을 위해 토포사 남치적을 기용하여 천여명의 관군을 동원, 대대적인 도적 소탕작전을 벌인다. 임꺽정은 결국 1562년 자신의 군사이던 서림의 배신으로 구월산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

사회의 부조리가 소설에서 묘사된 양반사회의 악행과 유사한 점이 있던 시절에는 금서였지만, 지금은 이런 책도 버젓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만화 곳곳에 우리의 옛말들 ( 깍짓동, 허방 등... ) 을 많이 사용하고, 그림체 역시 왠지 모르게 된장냄새가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그림체라서 임꺽정이라는 작품에 아주 어울렸다. 임꺽정은 이제는 교수로 작품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두호 화백의 대표적이자 최후의 대작이 될 것 같다.

PS ) 어린 시절에 얇은 동화책으로 된 임꺽정을 읽었는데, 그 당시에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이야기는 임꺽정이 빼았았던 평양 감사의 진상품이었다.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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