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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Soldiers Never D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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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s "Old soldiers never die." Speech(April 19,1951)

I stand on this rostrum with a sense of deep humility and great pride-humility in the wake of those great American architects of our history who have stood here before me, pride in the reflection that this forum of legislative debate represents human liberty in the purest form yet devised.
저는 깊이 겸허하는 마음과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단에 섰습니다. 겸손의 마음이란 저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서서 우리의 역사를 창조해 낸 저 위대한 미국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느끼는 것이며, 자부심은 이 입법 토론의 場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Here are centered the hopes and aspirations and faiths of the entire human race. I do not stand here as advocate for any partisan cause, for the issues are fundamental and reach quite beyond the realm of partisan consideration. They must be resolved on the highest plane of national interest if our course is to prove sound and our future protected.
이곳에는 全인류의 희망과 열망과 신념이 결집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느 당파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제가 말씀드리려는 이 문제들은 근본적인 것으로서 당파적 이해 영역을 훨씬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방향이 올바르다는 것이 입증되고 또 우리의 미래가 보호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들이 국가 이익이라는 최고의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I trust, therefore, that you will do me the justice of receiving that which I have to say as solely expressing the considered viewpoint of a fellow American. I address you with neither rancor nor bitterness in the fading twilight of life, with but one purpose in mind: to serve my country.
따라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전적으로 한 미국 국민의 신중한 견해 표명이라 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저는 어떤 원한이나 적개심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마음속에 단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조국 에 대한 봉사입니다.

The issues are global, and so interlocked that to consider the problems of one sector oblivious to those of another is but to court disaster for the whole. While Asia is commonly referred to as the gateway to Europe, it is no less true that Europe is the gateway to Asia, and the broad influence of the one cannot fail to have its impact upon the other. There are those who claim our strength is inadequate to protect on both fronts1), that we cannot divide our effort. I can think of no greater expression of defeatism.
이 문제들은 범세계적인 것들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한 부문의 문제들 을 다른 것들과 무관하게 고려한다면 결국 모두에게 재난을 초래하고 말 것 입니다. 아시아는 유럽의 관문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유럽이 아시아의 관문이라는 말 또한 그 못지않게 사실이며, 어느 한쪽의 광범위한 영향이 다른 한쪽에 그 충격을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군사력은 양쪽 전선을 다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우리의 노력을 분산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패배주의적 발언이 어디있겠습니까.

If a potential enemy can divide his strength on two fronts, it is for us to counter his effort. The Communist threat is a global one. Its successful advance in one sector threatens the destruction of every other sector. You cannot appease or otherwise surrender to communism in Asia without simultaneously undermining our efforts to halt its advance in Europe.
가상의 敵이 병력을 두개의 戰線에 분산시킨다면, 이에 맞서 반격을 가하 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全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 한 지역에서 공산주의 진출이 성공하면 다른 모든 지역까지 파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유화책을 쓰거나 또는 굴복하고 만다면 그 즉시 공산주의의 유럽 진출을 막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무산되고 말 것입니다.

Beyond pointing out these general truisms, I shall confine my discussion to the general areas of Asia. Before one may objectively assess the situation now existing there, he must comprehend something of Asia’s past and the revolutionary changes which have marked her course up to the present. Long exploited by the so-called colonial powers, with little opportunity to achieve any degree of social justice, individual dignity, or a higher standard of life such as guided our own noble administration of the Philippines,2) the peoples of Asia found their opportunity in the war just past3) to throw off the shackles of colonialism and now see the dawn of new opportunity, and heretofore unfelt dignity, and the self-respect of political freedom.
너무 자명한 이치들을 지적하기보다는 아시아 전반에 걸친 지역으로 국한시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아시아 정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그에 앞서 아시아의 과거, 그리고 지금의 아시아가 있기까지 그들이 겪은 혁명적인 변화에 관해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른바 식민 세력에 의해 오랫동안 착취당하고, 미국의 필리핀 식민 통치 때 고결한 지침이 되었던 어느 정도의 사회 정의나 인간적 존엄성, 높은 생활 수준을 성취할 기회를 거의 박탈당했던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은 식민지 잔재라는 질곡을 벗어버릴 기회를 얼마 전 끝난 전쟁에서 겨우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새로운 기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존엄성, 그리고 정치적 자유라는 자존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Mustering half of the earth’s population, and 60 percent of its natural resources, these peoples are rapidly consolidating a new force, both moral and material, with which to raise the living standard and erect adaptations of the design of modern progress to their own distinct cultural environments.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천연자원의 60%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 아시아 국가들은 정신적, 물질적 양면에서 새로운 힘을 신속하게 결집시키고, 그 힘으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 현대적 진보라는 구상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 환경에 적응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Whether one adheres to the concept of colonization or not, this is the direction of Asian progress and it may not be stopped. It is a corollary to the shift of the world economic frontiers as the whole epicenter of world affairs rotates back toward the area whence it started. In this situation, it becomes vital that our own country orient its policies in consonance with this basic evolutionary condition rather than pursue a course blind to
식민지화라는 개념에 집착하든 하지 않든 간에, 아시아는 이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이를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 정세의 중심점이 시발점으로 순환 회귀함에 따라 세계 경제의 최전선이 바뀌면서 생기는 당 연한 결과입니다.

the reality that the colonial era is now past and the Asian peoples covet the right to shape their own free destiny. What they seek now is friendly guidance, understanding, and support, not imperious direction;the dignity of equality, not the shame of subjugation. Their prewar standard of life, pitifully low, is infinitely lower now in the devastation left in war’s wake. World ideologies play little part in Asian thinking and are little understood.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한 방향을 쫓기보다는 기본적 인 발전 상황에 맞추어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고,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은 이제 자신의 운 명을 자유롭게 개척해 나갈 권리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 입니다.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령조의 지시가 아닌 우호적인 안내 역할과 이해, 그리고 지원입니다. 그들은 피정복자로서의 수치감이 아니라 평등이라는 존엄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These political-social conditions have but an indirect bearing upon our own national security, but do form a backdrop to contemporary planning which must be thoughtfully considered if we are to avoid the pitfalls of unrealism.
Of more direct and immediate bearing upon our national security are the changes wrought in the strategic potential of the Pacific Ocean in the course of the postwar.
그들의 생활수준은, 戰前(전전)에도 비참할 정도로 낮았지만, 지금은 전쟁 이 할퀴고 간 폐허 속에서 한없이 악화되었습니다. 세계의 이데올로기는 아시아인들의 사상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고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배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 줄 음식이요, 등 을 좀더 따뜻하게 해 줄 옷이요, 머리 위를 가려 줄 좀더 견고한 집, 그리고 정상적인 민족적 염원인 정치적 자유의 실현입니다.
이같은 정치·사회적 상황은 우리 국가 안보에는 단지 간접적인 영향을 미 칠 뿐이지만 우리의 현재 계획과 관련된 배경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비현실주의라는 함정을 피하려고 할 때 반드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 입니다.
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우리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戰後(전 후) 상황에서 태평양이 갖는 전략적 잠재력으로 인해 야기된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Prior thereto the western strategic frontier of the United States lay on the littoral line of the Americans, with an exposed island salient extending out through Hawaii, Midway, and Guam to the Philippines, That salient proved not an outpost of strength but an avenue of weakness along which the enemy could and did attack. The Pacific was a potential area of advance for any predatory force intent upon striking at the bordering land areas.
이전에는 미국의 서쪽 전략적 전선은 미국 본토의 해안선과 하와이, 미드웨 이 제도, 괌 등의 섬을 잇는 돌출부로 설정되어 공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 돌출부는 병력의 거점이 아니라, 적들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거나, 실제로 공격을 감행해 온 적이 있는 취약한 통로임이 증명되었습니다 . 태평양은 인접한 육지를 노리는 침략군들이 누구나 진격해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All this was changed by our Pacific victory. Our strategic frontier then shifted to embrace the entire Pacific Ocean, which became a vast moat to protect as long as we held it. Indeed, it acts as a protective shield for all of the Americas and all free lands of the Pacific Ocean area. We control it to the shores of Asia by a chain of islands extending in an arc from the Aleutians to the Marianas, held by us and our free allies.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태평양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전략적 전선은 태평양 全域을 포함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곳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는 한 우리를 보호해 줄 거대한 垓字(해자)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태평양 지역의 모든 자유 국가를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자유 맹방들이 장악하고 있는 알류산 열도에서 마리아나 제도까지 弧(호) 모양으로 펼쳐진 일련의 섬들에 의해 아시아의 해안까지 이르는 태평양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From this island chain we can dominate with sea and air power every Asiatic port from Vladivostok to Singapore―with sea and air power, every port, as I said, from Vladivostok to Singapore―and prevent any hostile movement into the Pacific.
고리처럼 연결된 이들 섬을 통해 우리는 해군력과 공군력을 가지고 블라디 보스토크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아시아의 모든 항구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 해군력과 공군력으로, 방금 말씀드렸듯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싱가포르 에 이르는 모든 항구를 말입니다 -- 그리고 태평양으로 진입하려는 어떤 적대 행위도 막을 수 있습니다.

Any predatory attack from Asia must be an amphibious effort. No amphibious force can be successful without control of the sea lanes and the air over those lanes in its avenue of advance. With naval and air supremacy and modest ground elements to defend bases, any major attack from continental Asia toward us or our friends of the Pacific would be doomed to failure.
아시아에서 침공해 올 때는 반드시 수륙 양면으로 공격해 올 것입니다. 수 륙 양면 공격은 진격 코스의 해상 통로와 그 위의 공중 통로를 장악하지 못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制海權(제해권)과 制空權(제공권), 그리고 기지를 방어할 수 있는 적당한 지상군을 갖추고 있으면, 대륙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나 태평양의 우리 우방으로 몰려오는 어떤 대규모 공격도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Under such conditions, the Pacific no longer represents menacing avenues of approach for a prospective invader. It assumes, instead, the friendly aspect of a peaceful lake…. The Japanese people since the war have undergone the greatest reformation recorded on modern history. With a commendable will, eagerness to learn, and marked capacity to understand, they have from the ashes left in war’s wake erected in Japan an edifice dedicated to the primacy of individual liberty and personal dignity, and on the ensuing process there has been created a truly representative government committed to the advance of political morality, freedom of economic enterprise, and social justice. Politically, economically and socially Japan is now abreast of many free nations of the earth and will not again fail the universal trust.
그같은 상황에서 태평양은 더 이상 가상 침략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위협적인 공격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호수와 같은 친근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현대사에 기록될 최고의 개혁을 수행해 왔습니다. 대단한 의지와 배우고자 하는 열정, 놀라운 이해력으로 일본인들은 전쟁의 참화가 남긴 잿더미 속에서 개인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일 수 있는 체계를 건설해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과정에서 정치적 도덕성, 경제 활동의 자유, 사회 정의의 高揚(고양)이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진정한 代議(대의)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That it may be counted upon to wield a profoundly beneficial influence over the course of events in Asia is attested by the magnificent manner in which the Japanese people have met the recent challenge of war, unrest, and confusion surrounding them from the outside and checked communism within their own frontiers without the slightest slackening in their forward progress.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일본은 지금 지구상의 많은 자유 국 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이제 다시는 세계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 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일본이 아시아에서의 정세 변화에 매우 중대하고 유익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는 점을 당당히 증명해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외부로부터의 전쟁, 혼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혼동 등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훌륭하게 대처해 왔을 뿐만 아니라 발전의 기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내부 전선에서 공산주의를 막아냈습니다.

I sent all four of our occupation divisions to the Korean battlefront without the slightest qualms as to the effect of the resulting power vacuum upon Japan. The results fully justified my faith….
저는 駐日(주일) 미군 4개 사단 모두를 한국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병력 공 백이 일본에 미칠 결과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저의 신 념을 확고하게 정당화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While this brief insight into the surrounding areas, I now turn to the Korean conflict. While I was not consulted prior to the president’s decision to intervene in support of the Republic of Korea, that decision, from a military standpoint, proved a sound one. As I say, a brief and sound one, as we hurled back the invader and decimated his forces. Our victory was complete, and our objectives within reach when Red China intervened with numerically superior ground forces.
주변 지역에 대한 이같은 통찰을 바탕으로 이제 한국 전쟁에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지원 개입 결정에 앞서 제게 자문을 구했던 일은 없었지만, 그 결정은 군사적 견지에서 볼 때 결과적으로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극히 명료하고 타당한 결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침략자들을 신속히 몰아내고 병력을 무력화시켰으니까요. 우리의 승리는 완벽했고, 우리의 목표는 거의 손 안에 잡힐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중공이 수적으로 우세한 지상군을 이끌고 개입했습니다.

This created a new war and an entirely new situation, a situation not contemplated when our forces were committed against the North Korean invaders―a situation which called for new decisions in the diplomatic sphere to permit the realistic adjustment of military strategy. Such decisions have not been forthcoming.
그로인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고 전혀 새로운 국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미군이 북한의 침략자들과 맞설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 그리고 군사전략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적 차원의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이 대두된 것입니다. 그러한 결정은 내려진 바 없 습니다.

While no man in his right mind would advocate sending our ground forces into continental China, and such was never given a thought, the new situation did urgently demand a drastic revision of strategic planning if our political aim was to defeat this new enemy as we had defeated the old.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우리의 지상군을 중국 대륙에 보내 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작전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 지만 새로운 상황의 전개로 군사전략의 과감한 수정이 다급하게 필요했습 니다. 우리가 과거에 적을 물리쳤던 것처럼 이 새로운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인 목표라면 말입니다.

Apart from the military need, as I saw it, to neutralize the sanctuary protection4) given the enemy north of the Yalu, I felt that military necessity on the conduct of the war made necessary5) (1) the intensification of our economic blockade against China; (2) the imposition of a naval blockade against the China coast; (3) removal of restrictions on air reconnaissance of China’s coastal areas and of Manchuria; (4) removal of restrictions on the forces of the Republic of China on Formosa6), with logistical support to contribute to their effective operation against the Chinese mainland.
압록강 이북 지역 적군의 聖域을 무력화시킨다는 군사적 필요성과는 별개로, 저는 전쟁수행과정에서 다음의 몇가지 군사적 행동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첫째 중국에 대한 경제 봉쇄 강화, 둘째 중국 해안에 해상 봉쇄 강행, 셋째 중국의 해안 지역과 만주에 대한 공중 정찰 제한 철폐, 넷째 대만의 자유중국군에게 내려진 제한의 철폐와 중국 본토에 대한 효과적 작전 수행 을 위한 병참 지원 등입니다.

For entertaining these views, all professionally designed to support our forces in Korea and to bring hostilities to an end with the least possible delay and at a saving of countless American and Allied lives, I have been severely criticized in lay circles, principally abroad, despite my understanding that from a military standpoint the above views have been fully shared in the past by practically every military leader concerned with the Korean campaign, including our own Joint Chiefs of Staff.
이러한 견해는 사실 모두 한국에 있는 우리 미군을 지원하고 최대한 신속히 적대 행위를 종식시키되 수많은 미군 및 연합군의 목숨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연구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저는 비전문가 집단, 특히 외국인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 제가 알기로는 군사적인 견해에서 보았을 때 앞서 말한 의견들이 우리 합동참모본부를 포함해, 과거 사실상 한국전과 관련이 있는 모든 군사 지도자 들이 이미 의견일치를 보았던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I called for reinforcements, but was informed that reinforcements were not available. I made clear that if not permitted to destroy the enemy built-up bases north of the Yalu, if not permitted to utilize the friendly Chinese force of some 600,000 men on Formosa, if not permitted to blockade the China coast to prevent the Chinese Reds from getting succor from without, and if there were to be no hope of major reinforcements, the position of the command from the military standpoint forbade victory.
저는 병력 증강을 요구했습니다만 군사력 증강은 불가능하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만약, 압록강 이북의 적군 기지 파괴나, 대만에 있는 약 60만의 우방 중국군의 활용을 허락받지 못하거나, 중국의 해안을 봉쇄해 중공군이 외부로부터 지원을 얻지 못하게 막도록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병력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희망이 전혀 없다면, 군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명령권자의 입장이 승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We could hold in Korea by constant maneuver and at an approximate area where our supply-line advantages were in balance with the supply-line disadvantages of the enemy, but we could hope at best for only an indecisive campaign with its terrible and constant attrition upon our forces if the enemy utilizes its full military potential.
우리는 한국에서 지속적인 작전을 통해 버틸 수 있고, 우리 補給線(보급선 )의 우위와 적군 보급선의 불리함이 비슷하게 균형을 이루는 어떤 지역에서 계속 버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기껏 해야 지지부진한 전투뿐입니다. 게다가 적군이 군사 병력을 전면 동원할 경 우 끊임없이 심각한 병력 소모를 감당하면서 말입니다.

I have constantly called for the new political decisions essential to a solution. Efforts have been made to distort my position. It has been said in effect that I was a warmonger.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I know war as few other men now living know it, and nothing to me―nothing to me―is more revolting. I have long advocated its complete abolition, as its very destructiveness on both friend and foe has rendered it useless as a means of settling international disputes….
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새로운 정치적 결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저의 입장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전쟁狂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진실이 이보다 더 심각하게 왜곡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 저만큼 전쟁을 아는 사람도 드뭅니다 -- 그러나 제게 그 어느 것도 -- 그 어느 것도, 전쟁만큼 혐오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저는 전쟁의 완전한 폐지를 오랫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우방과 적 모두에게 미치는 무서운 파괴성 때문에 전쟁은 국제 분쟁 따위의 해결 수단으로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But once war is forced upon us, there is no other alternative than to apply every available means to bring it to a swift end. War’s very object is victory, not prolonged indecision. In war there can be no substitute for victory.
하지만 일단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상항이 닥치면, 전쟁을 신속히 종결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 외에 다른 代案이 없습니다. 전쟁의 목적은 바로 승리이지, 질질 끄는 우유부단함이 아닙니다. 전쟁에서는 승리 이외에 아무 代案이 없습니다.

There are some who for varying reasons would appease Red China. They are blind to history’s clear lesson, for history teaches with unmistakable emphasis that appeasement but begets new and bloodier war. It points to no single instance where the end has justified that means, where appeasement has led to more than a sham peace. Like blackmail, it lays the basis for new and successively greater demands until, as in blackmail, violence becomes the only other alternative. Why, my soldiers asked of me, surrender military advantages to an enemy in the field? I could not answer.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중공에 대해 유화책을 쓰려는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명백한 교훈에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유화 정책은 새롭 고 더욱 처참한 전쟁을 초래할 뿐이라는 교훈을 역사는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적에 의해 수단이 정당화되거나, 유화정책이 거짓 평화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발전한 예는 역사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갈과 마찬가지 로, 유화정책은 새로이 교묘하게 더 큰 것을 계속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마침내는 폭력만이 유일한 代案이 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맙니다. 저 의 병사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왜 전장에서 적에게 군사적 우위를 내주느냐고.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Some may say to avoid spread of the conflict into an all-out war with China. Others, to avoid Soviet intervention. Neither explanation seems valid, for China is already engaging with the maximum power it can commit, and the Soviet will not necessarily mesh its actions with our moves. Like a cobra, any new enemy will more likely strike whenever it feels that the relativity in military or other potential is in its favor on a worldwide basis. The tragedy of Korea is further heightened by the fact that its military action is confined to its territorial limits. It condemns that nation, which it is our purpose to save, to suffer the devastating impact of full naval and air bombardment while the enemy’s sanctuaries are fully protected from such attack and devastation.
어떤 사람들은 중국과의 전면전으로까지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소련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타당성이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동원 가능한 최대한의 병력으로 교전을 벌이고 있고, 소련은 공연히 우리의 조처와 맞물려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코브라 뱀처럼, 새로운 적들은 누구나 군사적인 면에서건 다른 힘에서건 全세계적으로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공격해 올 것입니다. 한국의 비극은 한반도 내에서밖에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하려고 하는 그 나라가 해군과 공군의 전면적인 폭격으로 인해 초토화되는 참상을 겪도록 형벌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적군의 聖域은 이런 공격과 참화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는데 말입니다.

Of the nations of the world Korea alone, up to now, is the sole one which has risked its all against communism. The magnificence of the courage and fortitude of the Korean people defies description. They have chosen to risk death rather than slavery. Their last words to me were “Don’t scuttle the Pacific.”
全세계 국가들 중에서 한국만이 지금까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워 온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그 대단한 용기와 불굴의 의지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노예 상태를 택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무릅쓰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내게 한 마지막 말은 『 태평양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I have just left your fighting sons in Korea. They have met all tests there, and I can report to you without reservation that they are splendid in every way. It was my constant effort to preserve them and end this savage conflict honorably and with the least loss of time and a minimum sacrifice of life. Its growing bloodshed has caused me the deepest anguish and anxiety. Those gallant men will remain often in my thoughts and in my prayers always.
저는 지금 전투중인 여러분의 아들들을 한국에 두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모든 시련을 견뎌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정말 훌 륭하다고 주저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호하고 이 야만적인 분쟁을 명예롭게, 그리고 시간 손실과 인명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끝내고자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점차 심각해지는 유혈참사는 저를 깊은 고뇌와 근심 속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 용감한 젊은이들은 저의 마음속 에 그리고 항상 저의 기도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I am closing my fifty-two years of military service. When I joined the army, even before the turn of the century, it was the fulfillment of all of my boyish hopes and dreams. The world has turned over many times since I took the oath on the plain at West Point, and the hopes and dreams have long since vanished, but I still remember the refrain of one of the most popular barrack ballads of that day which proclaimed most proudly that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And, like the old soldier of that ballad, I now close my military career and just fade away, an old soldier who tried to do his duty as God gave him the light to see that duty. Goodbye.7)
저는 지금 5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군에 입대할 때 , 20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습니다만, 그것은 제 소년 시절의 모든 희망 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 포인트 연병장에서 임관하던 그 날 이후로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희망과 꿈도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저는 그 시절 가장 즐겨 부르던 어느 軍歌의 후렴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老兵(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 속의 老兵처럼 이제 저는 제 軍생활을 마감하고 사라지려 합니다. 神께서 의무에 대한 깨 달음을 주신 바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애쓴 한 노병으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자 注]
(1) 한국 전선과 유럽 전선을 가리킨다.
(2)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필리핀군과 함께 스페인을 물리친 미국은 1898년 파리조약에 의거해 스페인에 2000만 달러를 배상하고 필리핀을 할양받는다. 이어 1902년, 필리핀인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지배체제를 확립한 미국은 1946년 독립 때까지 필리핀을 지배한다. 이때 영어가 필리핀 전역에 보급되고, 미국의 대규모 경제 투자가 행해진다. 미국은 필리핀 내셔널 리즘의 영향을 받아 자치권 부여, 필리핀인들에 의한 입법회의 구성, 1934년 필리핀 독립법 미의회에 통과 등 자치권을 가능한 한 보장하는 통치 원칙을 지켜나갔다. 필리핀은 2차 대전 당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의 점령을 받기도 했으나, 1944년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과 필리핀군이 일본군을 격파하고, 1946년에 필리핀 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3) 제2차 세계대전을 가리킨다.
(4) 압록강 이북은 진격도 폭격도 제한되어 있었다.
(5) 6·25 동란을 국지화하려는 미국 정부 수뇌부, 특히 트루먼 대통령과, 중국 본토에 대한 전선의 확대를 주장하는 맥아더와의 전략상의 차이로, 맥아더는 1951년에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연합군 최고사령관, 유엔군 최고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6) 당시 장개석이 이끄는 국부군은 모택동의 중공군에 쫓겨 대만으로 피난해 있었다.
(7)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의 해임과 관련해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I didn’t fire him(Douglas MacArthur) because he was a dumb son of bitch, although he was, but that’s not against the law for generals. If it was, half to three-quarters of them would be in jail.”

맥아더(1880~1964)
美 육군사관학교(웨스트 포인트) 최우수성적 졸업. 웨스트 포인트 교장. 1945년 일본점령 연합군 최고사령관, 1950년 한국전쟁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연설의 배경]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03년에 육군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육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군에서는 極東通(극동통)으로 알려질 만큼 극동 지역의 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미국 극동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태평양전쟁을 맞이해 남서태평양 지역 사령관으로 對日(대일)작전을 지휘하면서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기도 했다.
1950년에 6·25 동란이 일어나자 UN 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했고, 특히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해 戰勢(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韓滿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중공에 대한 반격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로 인한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된다. 맥아더 장군은 군전략가로서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력과 설득력을 갖춘 유려한 문체의 좋은 글들을 많이 남긴 문장가로도 알려져 있다.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귀국한 뒤, 1951년 4월19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남긴 다음의 고별 연설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이 시사하듯이, 확고한 신념과 뛰어난 전략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최고 군인의 조국에 대한 우려와 자신에 대한 유감, 감회를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번역·해설 閔善植 시사영어사 사장·美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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