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 히데오(野茂 英雄, Hideo Nomo)
출생 : 1968년 8월 31일, 일본 오사카
185cm / 89Kg
우투우타


Amateur Era

오사카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계속 자란 오사카 토박이인 노모 히데오는 열성적인 야구팬인 부모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야구선수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외야수를 보았으며 투수로 전향한 것은 그 이후였다.

노모의 유년시절 야구에대한 식견이 뛰어났던 노모의 아버지는 어린 노모에게 투구폼에대한 조언을해주게된다.

[니 폼은 현재 팔꿈치에 무리가 많이가는 폼으로 머지않아 팔꿈치가 망가지게된다. 몸전체를 이용하는 투구폼으로 개조해보자!] 라고 제안을 했고 아버지와의 캐치볼을 통해 유명한 지금의 "토네이도 투구법"의 원형을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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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반때 노모는 오사카의 야구명문 고교인 PL학원의 라이벌학교인 긴키대학 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하려 테스트를 받으러갔는데 "너 정도의 선수는 우리학교에 널렸다"는 말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고한다. 당시의 노모는 토네이도 투구법이 채 완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컨트롤이 너무나 나빴던 것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의 PL학원엔 요미우리의 간판투수"구와타"와 세이부황금시대의 주역 "기요하라"가 팀의 투타에이스로 군림하며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이기도했다.

야구 명문고 진학에 실패한 노모는 결국 무명의 공립학교인 세이죠우 공업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세이조 공고 진학은 노모에게 있어서 불우한 일 만은 아니었다. 당시 세이조 공고의 감독은 "선수의 개성을 펴자" 라는 자유 분방한 지도 방침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노모는 자유롭게 그만의 독특한 토네이도 투구법을 고등학교 3년동안 완성시켜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노모가 보수적인 야구 명문고교에 입학했다면 분명 노모의 토네이도 투구폼을 문제삼으며 교정을 하려는 코치가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노모는 고교시절 팀의 에이스를 맡으며 팀의 무명반란을 일으켰는데 팀이 워낙 약체인 탓에 고교 3년 동안 전일본 고교생의 꿈인 고시엔진출엔 끝내 실패했지만 지역예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했다. 특히 2학년시절 노모는 고시엔 오사카 지역 예선전에서 퍼펙트게임도 한차례 달성하였다.

고교 졸업반이 되자 몇몇 구단은 노모에게 약간의 흥미를 나타냈지만 고시엔 출전 경험도 없었고, 투구폼이 이상한 무명의 투수를 입단시키려는 프로구단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노모는 고등학교 시절 선배였던 포수가 있던 사회인 야구의 신일본제철 팀에 입단한다. 당시 노모는 "일류 대학을 나와도 입사할 수 없는 신일본 제철에 입사할 수 있어 행운이다!"라고 매우 기뻐했다고한다.

입단후, 팀의 에이스인 나카가와란 투수에게 포크볼을 배워, 오늘날 자신을 있게만든 포크볼을 연마해 갔다. 빠른 직구에 낙차큰 포크볼을 가미한 그는 승승장구하며 일약 사회인 야구의 최고 투수로 발돋움하게 된다.

사회인 야구에서 대활약을 펼친 노모는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해 포수 후루타와 호흡을 맞추며 승승장구, 비록 결승전에서 미국에 5-3 으로 패했지만 일본의 은메달획득에 큰 공헌을 한다.(당시 야구는 시범종목) 당시의 올림픽 야구는 프로가 참여할 수 없었기에 일본 야구대표팀 역시 사회인 야구 팀원으로 구성되었었고, 결국 프로로 직행하지 않고 사회인 야구로 시작한 것은 그에게 큰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89년, 노모가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를 신청하자 사상 유례가 없는 8개 구단이 그를 지명했고, 추첨을 통해 비교적 비인기구단이던 긴테쓰 버팔로즈와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 계약을 맺게 된다. 이때도 그는 "자신의 투구폼은 교정하지 않는다" 라는 특이한 옵션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Success in NPB

당시 긴떼스의 감독은 다름아닌 이치로를 배출한 前오릭스 감독 '오기'였다.
오기는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잘파악하고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 어느 누구도 성공가능성을 회의적으로봤던 이치로의 "시계추 타법" 또한 오기감독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존중해주며 오늘날의 이치로가 있게한 숨은 공신자이다. 오기를 감독으로 만난 노모의 프로생활을 물만난 고기처럼 일본야구계를 단시일내에 평정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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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해인 90년 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였고, 235 이닝동안 삼진287개를 잡아내며 탈삼진왕,신인왕,일본의 사이영상이랄수있는 "사와무라상"과" M.V.P"까지 휩쓰는 엄청한 돌풍을 일으키며 매스컴의 주목을 한몸에받는다.  데뷔 첫해 노모의 완투게임은 무려 21번이었다.

입단 2년째, 2년생 징크스가 뭔지몰랐던것일까? 이 해도 그는 22회나 완투를 하며 4차례의 완봉승을 포함, 17승을 거두며 탈삼진왕을 차지하여 닥터 K의 명성을 가지게된다.

1992년 입단 3년차에도 그는 18승에 17회 완투, 완봉승 5회, 방어율 2.66, 228K라는 노모다운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4년 연속의 최다승 투수상과 최다 탈삼진왕을 획득!!
입단후 내리4년을 투수가 가질수있는 최고의 권위인 다승, 탈삼진을 4년연속으로 석권했으니말이다.

그는 일본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임에 동시에 최고의 투혼과 자존심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다들 아시는 얘기겠지만, 다시 한번 노모의 일본시절 불꽃같은 투혼을 소개하자면 때는 1993년 10월 1일. 14승을 구가하며 리그 다승 2위의 노모가 4년연속 리그 다승왕에 도전하던 시기였다. 그날 롯데와의 경기 4회에 타자의 타구에 머리를 맞은 노모는 그날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된다.

검사결과 두개골 골절...!!! 그러나 뇌출혈도 없고, 뇌파에도 이상은 없다는 진단을 받고 그는 다시 마운드에 서기로 결심하게된다. 그리고 8일후... 그는 다시 홈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 선발등판하게 된다. 말이 이상이 없지. 머리뼈에 금이 갔는데 누가 멀쩡했겠는가,,,?

제구력에 난조를 보이던 그는 볼넷을 9개나 허용하지만, 7과3/1 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된다. 하지만 투구수는 이미 144개를 기록하게된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당연히 싱거운 스토리가 되겠지만 이 일본인 오른손투수의 투혼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144구를 뿌린뒤 4일후. 그는 롯데와의 원정경기에 다시 선발등판 하게된다. 그리고는 연장 10회까지 완투하며 182개의 공을 뿌린다. 결국 그경기에서 승리하며 16승째를 마크하게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4일후 세이부전에 다시 등판하게된다.
그날 역시 팀은 접전끝에 연장 11회까지 가게 되는데 그런데 10회말 마운드에 올라가 있던 선수는 다름아닌 그날의 선발투수 노모였다. 결국 그날도 11회초 무라마키의 2타점 적시타로 역전한뒤 11회말 마무리 투수 아카호리에게 마운드를 넘기기 전까지 무려177개의 공을 던지게된 노모 히데오였다.

9일간 그가 던진 공의 갯수는 무려 503(!)개. 결국 그해 그는 다승과 탈삼진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인미답의 4년연속 다승왕, 탈삼진왕의 자리에 오르게된다. 

그러나 프로5년차였던 94년에 그간 무리한 투구영향( 4년간 연평균 230 이닝 이상 투구, 80 회 완투 ) 과 어깨 부상으로 인해 겨우 8승을 거두며 주춤한 모습을 보였던 노모는 성적부진으로 오기감독이 퇴출되면서 또다른 도전을 결심한다.

Japanese Tornado Striking American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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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절대신임하며 화려한 일본생활에 보이지 않는힘을주던 오기감독이 퇴진한후 노모는 구단과 갈등을 보이며 결국  긴떼스 구단을 퇴단하게된다. 당시 일본프로야구의 조항에서는 FA 자격을 얻으려면 10년간 뛰어야 하는데, 노모는 좀더 빨리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 위해서 일본프로야구에서 "은퇴" 를 발표한 후, 은퇴한 선수는 어느 리그에서든 FA 규약과 상관없이 뛸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다. (이렇게 편법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것이 일본프로야구의 미움을 사게 되어, 결국 훗날 그의 일본프로야구 복귀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

일본에서 성공한 스타였던 노모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을것이다. 야구 자체에 대한 정열과 대단한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했던 결정이었던 것이다.
노모가 선택한 팀은 바로 스카웃에있어선 탁월한 안목을 과시했고 일찍부터 아시아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LA 다저스였다.

당시 노모는 피터오말리 구단주의 얘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하는데 오말리 구단주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은퇴를 불사한 노모에게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이 메이저리그에 오기 위해 보여준 용감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메이저리그에 들어오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아시아의 젊은 선수들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했다 한다.

결국 1995년 LA 다저스에 200만불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며 1964~1965년 릴리버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무라카미 마사노리(現해설가)에 이어 일본인 두 번째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일본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미국으로간 노모의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일본내 분위기는 거의 절망적인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60년대 이후 근30 년동안 아무도 진출한적 없었던 곳에 노모가 간다고하니 마치 당시의 무라카미처럼 갔다가 '금방 다시올것' ,"무조건 실패다' 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당시 노모의 나이는 27세에 불과하였으나 일본야구 특성상 많은 투구수로 인해 해마다 구위가 하락세를 보이던중이었고 진출 전해인 1994년에는 8 승에 그쳤기에 그의 성공을 확신한건 그를 스카웃했던 다저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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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단 첫해 노모의 활약은 그의 별명그대로 '태풍'급이었다.

마이너에서의 한차례 투구후 1995년 5월2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노모는 5월을 한달간 5 게임에 등판하였으나 계속 승운이 따르지 않아 승을 챙기지 못하다가 6월 2일 뉴욕메츠전에서 시즌 첫승을 거둔후 자신감을 얻은뒤 특유의 폭포수와같은 포크볼을 앞세우며 '언터쳐블'(untouchable)'피쳐의 모습을보인다.
그는 전반기에만 6승1패, 방어율1.21, 탈삼진 109개를 기록하는 'Amazing' 한 성적을 거둔다. 변칙적인 토네이도 투구법으로 데뷔하여 시즌통산 그의 성적은 13승6패, 2.54 을 거두며 애틀랜타의 치퍼존스를 제치고 신인상,올스타전 출전,방어율2위,탈삼진왕(236) 을 차지하며 사이영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당시의 기록을 세부적으로본다면 놀라운 것이 9이닝당 삼진비율인데 무려 11.10 의 엄청난 페이스를 보이며 닥터 K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삼진:볼넷 비율은 3.03 : 1 이었고 피안타율 .182(1위) 출루허용률 .267 장타허용률은 경이적인 .286 이었다. 실로 메이저리그 첫해 데뷔했다는 투수의 성적이라곤 믿기지 않을 어마어마한 스탯이 아닐수없다. 또 완투 4회 완봉승 3회를 기록하며 당시 다저스의 에이스인 라몬 마르티네스(17승7패방어율3.66)보다 나은성적을 거두기도하였다.


그해 노모는 감독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선발투수로 예정됐던 그렉 매덕스의 양보로 1981년 페르난도 발렌주엘라(당시 LA 다저스) 이후 처음으로 신인으로서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발투수로 나서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당시 맞상대를 한 아메리칸리그의 선발은 '랜디 존슨'이었다. 피칭내용 또한 훌륭해 2이닝동안 1안타 3탈삼진의 호투를 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노모는 그 당시 올스타전 선발투수 등판은 자신의 야구인생중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이후 7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LA 다저스에서 3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노모히데오는 5이닝 7안타 5실점으로 부진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탈락을 지켜만 봐야 했다.  

이듬해 노모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는가 하면 1996년 9월17일 타자들의 무덤으로 불리며 그 어느 특급투수도 버텨내기 힘들다는 덴버에 위치한 고지대 "쿠어스 필드"에서 그는 사상첫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을 수립하게된다.


당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다투는 중요한 경기에 노모는 선발로 등판했다.
심리적 압박에 전날부터 내린 비와 덮쳐오는 한기, 경기 지연 등 악재가 겹치며 노모는 ‘잘 버티면 5회’라는 예상을 뒤엎고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승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느 때처럼 CD를 들으면서 앞으로 모든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렸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은 흐름에 맡기겠다고 생각했다.”

노모는 시합 전에, 던져야 할 볼 하나하나를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한다.
눈 앞에 있는 각각의 문제에 대해 답을 끌어내 본 시합에서 형상화 시킨다. 경기가 끝나면, 던진 볼 하나 하나를 되새겨 보고 검증하고 잘못이 있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수정하고 답을 낸 뒤에야 잠 든다는 노모 히데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단 말밖엔 달리 할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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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최종성적은 16승11패 3.19 의 좋은 활약으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기도했다. 비록 포스트시즌 등판에서는 3 IP 5 ER 5 H, 2 BB의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 해에 전매특허인 탈삼진도 234개를 잡아내며 닥터K 로서의 면모를 다시한번 보여주며 "노모 마니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해를 보낸다.

노모의 흠이 있다면 역시나 우려했던 퀵모션에서의 투구폼인데 노모의 폼을 간파한 주자들은 누상에 나가면 뛰기바빳다.무려 63번의 도루시도가 있었는데 52개의 도루를 허용하고 11번만 잡아내는 심각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해이기도하다. 당시 배터리를 이룬 메이저리그 최고의 공격형포수 "마이크 피아자" 의 약한 어깨 또한 불난집에 기름을 부은격이 되기도한것이다.

2년차 시즌을 징크스없이 무난하게 마친 노모에게 금의 환향의 기회가 찾아드는데 시즌 후 미국 올스타팀의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였을때 일본 국민들의 열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메이저 3년차, 전반기에만 9승을 거두며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후반기 필라델피아전. 그해 신인왕을 수상한 필라델피아 3루수 스캇 롤렌의 타구가 투수 정면으로 날아간다. 황급히 피한려던 노모. 그러나 타구는 노모의 오른쪽 팔꿈치를 그대로 강타한다. 당시 노모는 부상후 한경기 거르고 나선 첫 복귀전에서 처참하게 망가지며 고비를 맞이한다. 부상의 여파인지 그 특유의 토네이도 투구폼을 버리고 셋포지션으로만 던진것이다.

시즌성적은 14승12패 방어율4.25 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찬호와 함께 팀내 다승1위, 투구이닝(207.1),탈삼진(233), 게임당 탈삼진율(10.11), 선발 등판 횟수(33)등에서 선두에 오르며 에이스의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시즌후 노모는 모험을 걸게되는데..
시즌후 그는 팔꿈치 뼈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된다. 1998년 스프링 트레이닝 에서 의사는 노모가 다시 피칭을 해도 좋다는 소견을 냈었지만 그는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구속은 크게 감소되었고 그로 인한 커맨드의 실종은 큰 문제를 일으켰다. 다저스 코칭스텝은 그의 투구를 이해하지 못했고, 노모와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만 되어 갔다.
시즌들어 노모는 부진의 부진을 거듭하며 다저스타디움에선 노모가 등판하는날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트레이드 전까지 12차례 등판해 2승7패 5.05란 성적을 기록한 노모. 급기야 노모에 대한 좋지못한 소문들이 돌게되면서 결국 노모는 자신이 트레이드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해 메츠로 트레이드 된다. 메츠로의 트레이드 후 노모는 그와 절친한 투수 코치 데이브 월러스와 그의 배터리 콤비였던 피아자와 재회하게 되는 행운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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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의 성적은 여전히 실망스러웠고 그의 구속과 커맨드는 다저스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메츠로 적을 옮긴 노모는 16번 선발등판해 4승5패 4.82를 기록하며 메츠에서의 반시즌을 마무리 짓는다. 다저스시절과 합산한 98년 성적은 6승12패로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결국 노모는 시즌후 메츠로부터도 버림을 받게된다. 웨이버공시후 시카고 컵스에서 옵션포함 280만불에 노모를 사게되지만 마이너에서 좀더 뛰고오라는 구단의 방침에 노모는 반발하며 결국 시즌이 시작되기전 노모는 최소연봉의 수모를 감수하며 밀워키 블루어스로 이적하게된다. 노모의 자존심을 알수있는 대목이다.

밀워키에서 99시즌을 보낸 노모는 12승(8패)을 거두며 부활에 성공하는듯 했다.

그러나 이듬해 노모는 또다시 팀을 옮기게 되는데 자신을 믿고 선발로 기용해준 필 가너 밀워키 감독이 디트로이트로 옮기자 노모도 미련없이 디트로이트로 향하게된다. 메이저 커리어 7년만에 아메리칸리그 투수로 변신하게된 노모는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물타선에 호되게 당하며 아메리칸리그에선 그리 나쁘지 않은 방어율 4.74를 기록하고도 99년과는 반대의 승패(8승12패)를 기록하며 2000시즌을 마무리 짓는다. 시즌후 연봉계약에서 디트로이트와 노모 양자는 연봉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합의점을 찾지못하게 된다. 이때 노모의 부활을 예감한 보스턴은 시즌후 노모를 4,500,000$에 사들이며 노모는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게된다.

다저스,메츠,밀워키,디트로이트를 떠돌아다니다가, 보스턴의 빨간유니폼을 입었던 노모.
그 사이 투수에게 치명적인 수술을 받기도 했고, 직구스피드는 전성기를 지나가고,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저스시절에는 2번 진출했지만, 더불어 1회전 완패, 메츠시절엔 아쉽게 찬스를 놓치고, 밀워키와 디트로이트 시절에는 꿈도못꿧던 플레이 오프. "월드시리즈 출전이 꿈" 이라던 노모에게 있어서 보스턴이 처음 그 꿈을 이루어줄 가능성이 있는 팀이었다. 투타의 밸런스부터, 최대 라이벌 양키스를 저지할 최우선후보로 꼽히고 있는 보스턴의 일원이 된것은 노모를 다시 한번 분발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팀과 자신이 추구하는 "우승"에 목말라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기에 이상적인 조합이라 생각된다

 극강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은 2선발의 중책을 부여받은 노모는 개막전에서 페드로를 내세우고도 볼티모어에게 패해 부담감을 안고 선발 등판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이 부담감이 오히려 그에겐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을 부여했을까..?
보스턴 레드삭스가 2001년 4월 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구장인 캠든야드에서 볼티모어와 경기를 벌였다. 공교롭게도 노모가 이날 볼티모어전도 그랬지만 다저스시절 1996년 9월 17일에 쿠어스필드에서 대전한 콜로라도전에서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경기가 이뤄지지못했던 경기였던점이 공통적인 사항이었다.
콜로라도엔 거센 비가 퍼부었고, 3시간정도 경기개시가 늦었다. 볼티모어에서는 전기 계통의 고장을 이유로 조명과 스코어 보드가 점등되지 않아 43분간 지연되기도 했다. 더불어 선발 마운드에선 노모 히데오는,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지않으며 위업을 달성하게된다. 사이 영,짐 버닝, 놀란 라이언에 이은 역사상 4번째의 양리그에서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것이다.

경기에 들어간 노모는 초반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고, 높은볼을 의식해서 던졌다.
포크를 유인구로 사용하며 카운트를 벌고, 직구에 승부를 겨루는 역패턴도 상대타자의 허를찌르게하는 패턴이었다. 직구스피드의 MAX는 91마일(146km). 전성기 보다 확실히 떨어졌었지만, 좋은 무브먼트와 커맨드의 향상은 다저스시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타자에게 던진 110구째 바깥쪽 직구가 91마일이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노모히데오란 투수의 고집을 알수있는 장면이었다. 삼진은 무려 11개를 잡았고, 9회까지 110개의 볼로 볼티모어 타선을 잠재웠다.

9회말, 볼티모어 관중들은 비록 상대팀이었지만 노히트 노런을 의식한 듯 모두 일어서서 경기장을 지켜보았고, 1사후 마이크 보딕의 안타성 타구를 마이크 랜싱이 몸을 날리는 그림같은 수비로 서포팅 해주며 결국 그는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노모가 또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해 페드로란 승리보증수표가 부상으로 주춤거린사이 노모는 4.50의 방어율에 13승(10패)기록하는등 모든 투수성적을 통틀어 최고의 활약을 보이면서 에이스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게된다. 고무적인 현상은 바로 자신의 전매특허인 삼진을 220개를 잡아내며 리그 삼진 1위에 오르면서 닥터K 로 면모를 일신하게 된점이었다. 보스턴에서 재기에 성공한 노모는 보스턴의 재계약의사를 뿌리치고 FA가 된 노모는 다시 친정팀이라 할수 있는 다저스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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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노모는 2년간 1100 만 달러의 연봉계약을 맺으며 다시 예전 소속팀 다저스로 돌아온 노모. 98년 모욕적인 트레이드 이후 거의 3년만에 다시 다저스에 복귀한 셈이었다. 그
리고 보여준 2002, 2003 시즌의 활약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각각 16승씩을 올려주었고 방어율은 3.39 와 3.09를 찍어냈다. 그 두해 동안 220 이닝과 218 이닝을 던지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에이스 케빈 브라운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만 했다. 

Decline

그러나 2003시즌후 노모는 그간의 잦은 부상과 혹사에 의한 쇠퇴 징후를 보여준다. 결국 시즌중 미뤄왔던 어깨 수술을 받게된다.

2004시즌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다저스 의료진들은 노모가 투구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결정을 내렸었다.
노모는 그의 부상에 대해 전혀 불만을 나타내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모두가 노모의 어깨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시범경기 내내 흡사 배팅볼을 던지는 투수처럼 고전을 면치 못했다. 노모 같은 위닝샷을 보유한 투피치투수는 구질이 다양한 다른 투수들 처럼 투구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노모가 메이저에 건너오기전 미.일 올스타전때 노모의 투구를 지켜본 미 스카우터가 "메이저리그에 가도 25승은 할 선수"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로 노모의 전성기 시절 직구의 커맨드와 무브먼트는 그의 주무기 포크볼을 더욱 강력한 무기로 만들게한 일종의 좋은 양념거리였다. 하지만 수술후 노모의 직구는 과거와 비교해 그렇지 못했다. 비록 시범 경기에서 큰 부진을 겪었지만 감독 짐 트레이시는 그를 시즌 개막전 투수로 올려 보낸다. 그리고 그의 부진 은 시작되었다.

90마일 육박했던 패스트볼은 겨우 84마일을 찍기가 힘들었고 선발투수의 마지노선인 5회를 버티기도 버거워 보였다. 결국 2004년 18경기 선발 등판해 단 84 이닝만 던지며 4승11패 8.25란 처참한 결과를 낳게된다. 84이닝 투구해 단 54개의 삼진에 42개의 볼넷을 허용해 제구와 볼의 위력모두를 잃은 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근근히 버텨오던 노모는 부상부위가 도져 부상자명단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게된다. 노모는 결국 시즌후 또다시 다저스에서 용도 폐기처분 선언을 당하며 일찌감치 다른팀을 찾아봐야했다.

보통 선수라면 이정도 했고 이정도의 몸상태에 이정도급의 성적을 남겼으면 고국으로 돌아가 편한히 야구하며 야구인생을 마무리 지을수도 있었겠지만 노모는 달랐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노모의 집념과 고집은 유명하다. 노모는 자신을 원하는 팀이라면 어느팀이라도 상관없다는 백의종군하며 팀을 찾아나선다.
결국 노모가 둥지를 튼팀은 만년 꼴찌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였다. 그것도 80만$을 받는 마이너계약이었다.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한 노모를 루 피넬라감독은 25인 메이저로스터에 포함시키며 5인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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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모의 관록과 그의 야구열정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맞은 2005시즌 첫등판에서 노모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1피안타 1실점의 쾌투로 마수걸이 승을 따냈다. 그러나 줄어진 직구 구속으로 인해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템파베이에서의 2005 시즌은 19 경기에 등판해 100 이닝을 던지며 5승 8패, 방어율 7.24 를 기록하는데 그친다. 볼넷/삼진 비율 역시 51/59 로 매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투수로서 완연한 하락세를 보인다.

200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노모는 이 해를 트리플 A 샬롯 나이트에서 보내며 한해동안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그리고 2007년,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인 레온데스 델 카라카스와 계약을 맺는다. 2007 년 10월 20 일에 베네주엘라 리그 데뷔전을 가진 노모는 1 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낸다.

Return to Major League Baseball

2008년 1월 4일, 노모는 캔자스 시티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합류할 경우 60 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는다.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메이저리그 25 인 로스터에 합류한다. 4월 10일, 노모는 2005 년 이후 3 년만에 메이저리그 경기에 등판하여 뉴욕 양키즈를 상대한다. 그러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호르헤 포사다에서 백투백 홈런을 맞으며 3 이닝 2 실점으로 부진한 투구를 보인다.
이후 가진 2 차례의 등판에서도 1.1 이닝동안 7 실점하는 최악의 투구를 보인끝에 결국 4월 29일, 캔자스 시티는 그를 방출하기에 이른다. 2008 년 시즌 기록은 3경기 등판, 4.1 이닝 9 실점, 삼진 3 개에 승패없이 방어율 18.69 였다.


Adiue!  Nomo

2008 년 7월 17일, 노모 히데오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가 19년의 프로 생활을 접으며 밝힌 은퇴 이유는 “프로 선수로서 팬들에게 보여 드릴 만한 퍼포먼스가 없다”는 것. 그는 “아직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만 내 생각만으로 어중간하게 있으면 주위에 폐만 끼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들은 ‘메이저리그의 선구자’ 로 표현하며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와 같이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일본야구선수들이 활약하게 된 것은 그의 도전정신으로 일본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수 있다는 증명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라며 ‘그의 공적은 불변’ 등의 표현으로 ‘떠나는 영웅’에게 아쉬움과 찬사를 보냈다.

미일 통산 201 승, 고교 시절과 일본프로야구 시절의 무리한 투구와 이후 잦은 부상으로 미국프로야구에서의 전성기가 길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미/일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영웅의 뒷모습이었다. 다만 화려한 길을 걸었던 그는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단 한번도 우승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은퇴하면서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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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록

아마츄어
1988 서울올림픽 은메달

일본프로야구
1990 - 1993 4년 연속 다승왕, 삼진왕
1990 신인왕, 승률왕, 방어율왕, 리그 MVP, 사와무라 상 수상

메이저리그
1995 Rookie of the year
1995 올스타전 선발투수
1996 ESPN 선정 "Breakthrough Athlete" Award
1995/2001 리그 탈삼진왕
1996 (vs 콜로라도 로키즈) / 2001 (vs 볼티모어 오리언즈) 양대리그 노히트노런 기록


통산성적
일본프로야구(1990 - 1994)
SEASON TEAM W L ERA G GS CG SHO SV SVO IP H R ER HR HBP BB SO
1990     Kintetsu Buffaloes        18 8 2.91 29 27 21 2 0 --- 235.0  167  87  76 18 4 109 287
1991     Kintetsu Buffaloes  17  11  3.05 31 29 22 4 1 --- 242.1  183  92  82 21 5 128 287
1992     Kintetsu Buffaloes  18 8 2.66 30 29 17 5 0 --- 216.2  150  73  64 13 1 117 228
1993     Kintetsu Buffaloes  17 12 3.70 32 32 14 2 0 --- 243.1  201  106  100 22 7 148 276
1994     Kintetsu Buffaloes  8 7 3.63 17 17 6 0 0 --- 114  96  55  46 9 2 86 126
Career Totals  78 46 3.15  139 134 80 13 1 --- 1051.1  797  413  368 83 19 588 1204

메이저리그(1995 - 2008)
SEASON TEAM W L ERA G GS CG SHO SV SVO IP H R ER HR HBP BB SO
1995     Los Angeles Dodgers 13 6 2.54 28 28 4 3 0 --- 191.1 124 63 54 14 5 78 236
1996     Los Angeles Dodgers 16 11 3.19 33 33 3 2 0 --- 228.1 180 93 81 23 2 85 234
1997     Los Angeles Dodgers 14 12 4.25 33 33 1 0 0 --- 207.1 193 104 98 23 9 92 233
1998     Los Angeles Dodgers 2 7 5.05 12 12 2 0 0 --- 67.2 57 39 38 8 3 38 73
1998     New York Mets 4 5 4.82 17 16 1 0 0 --- 89.2 73 49 48 11 1 56 94
1999     Milwaukee Brewers 12 8 4.54 28 28 0 0 0 0 176.1 173 96 89 27 3 78 161
2000     Detroit Tigers 8 12 4.74 32 31 1 0 0 0 190.0 191 102 100 31 3 89 181
2001     Boston Red Sox 13 10 4.50 33 33 2 2 0 0 198.0 171 105 99 26 3 96 220
2002     Los Angeles Dodgers 16 6 3.39 34 34 0 0 0 0 220.1 189 92 83 26 2 101 193
2003     Los Angeles Dodgers 16 13 3.09 33 33 2 2 0 0 218.1 175 82 75 24 1 98 177
2004     Los Angeles Dodgers 4 11 8.25 18 18 0 0 0 0 84.0 105 77 77 19 4 42 54
2005     Tampa Bay Devil Rays 5 8 7.24 19 19 0 0 0 0 100.2 127 82 81 16 2 51 59
2008     Kansas City Royals 0 0 18.69 3 0 0 0 0 0 4.1 10 9 9 3 0 4 3
Career Totals 123 109 4.24 323 318 16 9 0 --- 1976.1 1768 993 932 251 38 908 1918

미/일 통산기록  201승 155패 탈삼진 3122 개


참고 사이트
야구오타쿠 노모 히데오
Wikipedia - Nomo Hideo
노모 히데오 메이저리그 통산기록
노모 히데오 일본프로야구 통산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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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덕 2008.08.14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엉엉엉... 여자친구랑 헤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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